MYARTS

  • 작가명 : 이보람, 캔버스  유화 72 x 91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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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전쟁이나 테러의 희생자를 그리는 나의 작업들은 그 대상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각의 프레임에 담겨진 비극적인 상황들은 슬픔과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존 버거는 [고통의 장면들을 보여 주는 사진들]에서 이러한 감정들은 현실적 실천에 대한 의지들을 무력화시키는 함정과 같다고 말한다.
전쟁이나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신문과 텔레비젼, 인터넷에서는 수없이 많은 보도사진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런 사진들을 볼 때, 그리고 충분히 묘사하지 못할 정도의 처참한 순간을 담고 있는 장면들을 확인하게 될 때에 '본다'는 행위의 순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전쟁을 다루는 사진들, 특히 전쟁의 희생자들을 다루는 사진들에 대한 신뢰와 의존도는 매우 높다.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생생한 이미지를 보는 이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표피적으로 그것은 의심이 없는 이미지이며 윤리적으로도 의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처참한 현실을 담고 있는 보도 사진에 대한 의심은 사진 속 희생자들에 대한 의심과 동일시 된다. 전쟁이라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건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관심이나 전쟁보도사진에 대한 이해는 희석되고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 의한 반응만이 남게 된다. 결국 보는 이들을 휘감은 것은 슬픔과 죄책감 뿐이다.
이때의 충격과 슬픔, 죄책감은 특별히 무기력하다. 연민을 느끼고 동점심을 갖지만, 거기에서 멈춰버린다. 이미지들은 단지 감정들을 값싸게 낭비해버리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과 죄의식을 소비해버리는 데에서 끝난다. 대상이 된 채 사진 속에 얼어붙은 사람들의 무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실은 고통이나 처참함, 슬픔과 같은 모호한 카테고리로 묶여 은유에 지나지 않은 이미지로 전락해버린다. 마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떠도는 껍질처럼. 희생자를 그리는 나의 작업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단지 구경꾼이 되어 가는 것, '본다'는 것의 의미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고백이자 경고이다.
때문에 작업에서 소재가 되는 것은 타국의 전쟁을 다루는 사진들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피 흘리는 사람, 다치거나 죽은 어린 아이들, 오열하는 여자들과 같이 타인의 고통의 순간들을 클로즈업한 사진들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나', '우리', '여기'의 입장에서 '그들', '거기'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 즉, 나의 작업은 제삼자로서 바라보는 전쟁과 그것의 소비에 관한 것이다.
나의 그림들 속에서 사진 속 희생자들은 온전히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눈이 생략되고, 인종과 국적에 상관없이 회색의 딱딱한 피부를 지니게 되며, 때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부분들(팔, 다리, 몸통, 얼굴 등)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얼굴들은 그저 비명을 지르거나, 흐느끼거나 아파하는 표정만을 보여준다. 그들의 표정과 그들이 흘리고 있는 붉은 피는 희생자들을 '고통', '슬픔'과같은 단순화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버리고 그들은 그러한 상징에 대한 박제화되고 익명화된 상징처럼 존재한다.
희생자가 그려진 나의 작업들은 감정과 그리는 행위 자체를 포함하면서 자화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나에게 '그리는 행위'는 대상을 '보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그리는 것은 나에게 가장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또한 그것은 작가로서의 내가 사회, 혹은 세상과 소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림 속에서 작가로서의 나를 대체하는 이미지는 붉은 색을 묻히고 있는 붓들이다. 희생자들을 향해 공격적으로 세워져 있는 붓들은 나인 동시에 나의 행위와 시선을 대변한다. 붓털의 붉은 색들로 인해 마치 그것들이 희생자들을 찔러 피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엔 나의 사소한 불편함, 작고 가볍고 사라지기 쉬운 죄책감이 담겨 있다.
작품 속에 표현되는 여러 이미지들은 모두 어딘가가 결핍되어 있는 불안정한 것들이다. 눈이 가려진 인형머리. 몸에서 떨어져 나온 인형의 팔. 잘려나간 손가락과 잘려진 손, 주렁주렁 맺혀 있거나 흘러내리는 분홍색조차 그것이 가지는 의미, 혹은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어떤 심리상태를 반전하여 표현한다. 그럴 것이라고 기대되어지는 그 의미, 그 감정을 내 그림의 분홍색은 가지지 않는다고-일반적으로 분홍색은 '사랑'을 상징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상업적인 색이기도 하다. 감정이 담겨있는 듯 따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텅 비어있는 색인 분홍색은 현대인이 가지는 가벼운 죄의식과도 닮아 있다-. 그리고 보도사진들. 희생자들이 담긴 그 사진들은 나에게 그것의 이미지를 넘어선 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순히 알 수 없는 대상들, 불편함을 주는 어떤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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